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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 있습니다. 바로 홍상수 감독입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즉흥적인 대사, 흑백 화면과 술자리 대화로 상징되는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는 “어렵다”,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깊이 있는 철학적 시선과 미니멀리즘의 미학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왜 프랑스에서 홍상수 영화가 더 사랑받는지, 그 이유를 문화적, 영화적 시각에서 분석해보겠습니다.
프랑스 관객이 본 홍상수: 낯설지 않은 철학과 일상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예술 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존중이 깊은 나라입니다.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누벨바그’를 이끈 감독들이 그랬듯, 감독의 시선이 강하게 투영된 영화, 즉 ‘감독의 영화’가 프랑스에서는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홍상수의 영화는 감독 개인의 철학과 시선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으로, 프랑스 영화계의 전통과 상당히 잘 맞아떨어집니다.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은 뚜렷한 목표도 없고, 극적인 갈등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 일상의 대화, 우연과 반복을 통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프랑스 예술영화 팬들에게 매우 익숙한 방식입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구조의 단순성 속에 반복과 변주를 통한 내적 리듬을 형성합니다. 이는 클래식 음악이나 시에 가까운 감상 경험을 제공하며, 특히 문학적 감수성이 강한 프랑스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프랑스에서 홍상수는 ‘일상을 성찰하게 만드는 감독’으로 인식되며, 단순한 동양의 예술감독이 아닌 철학적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제와 평론가들의 환대: 작가주의의 전형
프랑스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제 중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를 개최합니다. 홍상수 감독은 이 칸 영화제뿐만 아니라, 로카르노, 베를린, 낭트 등 프랑스와 유럽 전역의 영화제에서 꾸준히 초청받아 왔습니다.
특히 프랑스 평론가들은 홍상수 영화의 구성과 주제를 세세하게 분석하며, “동양의 에릭 로메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지 겉모습의 유사성만이 아니라, 인물 간 대화에 중심을 두고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서사 방식, 미니멀한 카메라 워크 등 영화 언어의 유사성이 있음을 뜻합니다.
프랑스 영화계는 그의 영화에 대해 “소음 없는 불안”, “긴장 없는 반전”, “감정의 결이 보이는 시선” 같은 문장으로 그 가치를 정리합니다. 이러한 감상은 국내에서 흔히 나오는 “졸리다”, “스토리가 없다”는 반응과는 사뭇 다릅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평론지와 영화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다루며, 영화학과 커리큘럼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이는 홍상수 감독이 단지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감독이 아니라, 현대 유럽 예술영화의 흐름 속 한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내와의 온도차: 미학의 이해와 수용의 차이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에서의 명성과는 달리 한국 내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늘 호평만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내에서는 “맨날 똑같다”, “이해가 안 간다”, “대사만 가득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문화적 수용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영화 관객은 대체로 극적 전개와 명확한 메시지, 빠른 서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에 반해 홍상수 영화는 대사의 흐름과 미묘한 시선, 반복되는 일상의 디테일을 통해 서사를 구성하는데, 이런 방식은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해석과 여운을 남기는 스타일입니다.
프랑스는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해석의 자유와 감상의 다양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완벽한 서사보다는 감정의 미묘한 떨림이나 사유의 계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적 맥락이 바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프랑스에서 더 깊이 있게 수용되는 배경입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그의 사생활 이슈가 종종 작품에 대한 평가와 혼재되어 논의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철저히 작품 중심의 비평이 이루어지는 것도 영향력의 차이를 만든 요인 중 하나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프랑스에서 단순한 ‘외국 감독’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예술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프랑스 관객의 감성과 철학적 전통 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며, 한국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차이는 단지 작품의 내용이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며, 그를 바라보는 문화적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홍상수 영화가 어렵게 느껴졌다면, 프랑스 관객처럼 ‘이야기’보다 ‘느낌’을 중심으로 다시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